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전개 (문단 편집) === 1980년 5월 18일 0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 시행 === [[http://www.518archives.go.kr/books/ebook/2/#page=19|포고령 제19호]] [[http://www.518archives.go.kr/books/ebook/2/#page=20|최규하 대통령 특별담화]] [youtube(tLnrUyA3ISc)]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비상계엄 해제를 논의하기 위한 본회의 개최를 결정하게 되자, 신군부는 이를 막고 정권 장악을 기도하게 된다. 그리하여 [[전두환]], [[노태우]] 등의 압박으로 열린 비상국무회의에서 1980년 5월 18일 0시를 기해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단행한 것이었다. 일정을 하루 앞당겨 1980.5.16. 22:30 김포공항에 도착한 최규하 대통령은 23:00경부터 1시간 가량 청와대에서 최광수 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신현확 국무총리, 김종환 내무부장관, 주영복 국방부장관,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서리, 이희성 계엄사령관 등으로부터 그 동안 국내에서 있었던 학생 소요 등 시국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는데, 김종환 내무부장관은 경찰력으로 시위에 대처하는 데는 한계에 와 있어 어려운 형편이라고 보고하였고, [[주영복]] 국방부장관은 북괴 침공설 관련 첩보가 입수되었으며 군에서 내일 대비책을 강구할 예정임을 보고하였다. 5.17. 09:30경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을 주영복 국방부장관에게 보내,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회 해산, 비상기구 설치 등「시국수습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임을 통보하고, 계엄 확대 등을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의 결의 사항으로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10:00경 청와대에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대통령 부재중의 안보상황과 국내 치안상황을 보고하면서 비상계엄 전국 확대선포 등 시국수습 방안과 소요 배후조종 및 권력형 부정축재 험의자 체포·조사 계획을 보고하였다. 전군 주요지휘관회의 시작 전 주영복 장관은 장관실에서 유병현 합참의장에게, 외부로부터 요청이 있어 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안건은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회 해산, 비상기구 설치 문제라며 의견을 물었으며, 유병현 합참의장은 국회 해산 문제를 군이 관여할 수는 없으며 군의 정치 개입은 헌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비상기구 설치, 국회 해산을 군지휘관회의에서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견해를 표명하였고, 이어 이희성, 김종곤, 윤자중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합석한 자리에서도 같은 의견을 개진하였다. 5.17. 11:00 주영복 국방부장관은 국방부 제1회의실에서 유병현 합참의장, 조문환 국방부차관, 이희성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김종곤 해군참모총장, 윤자중 공군참모총장, 윤성민 1군사령관, 진종채 2군사령관, 유학성 3군사령관, 차규헌 육군사관학교 교장, 황영시 육군참모차장, 정호용 특전사령관, 노태우 수경사령관, 박준병 20사단장 둥 육·해·공군 주요 지휘관 43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열었다.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는 최성택 합동참모본부 정보국장의 북한동향 및 국내외 정세 분석 보고에 이어 참석자들의 발언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주영복 국방부장관은 계엄 하에서 학원 소요가 진정되기는 커녕 오히려 과열·폭력화되어 가고 있고 북괴의 동향도 심상치 않으므로 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확대하고자 하니 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하였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계엄 확대에 이견이 없다는 발언을 한 가운데, 안종훈 군수기지사령관이 비상계엄 전국 확대는 국민의 합의와 총화에 의해 하여야 하는데 시기상조라며 반대 의견을 표명하자, 정호용 특전사령관은 사회 안정을 위하여 군이 나설 것을 주장하였고, 노태우 수경사령관, 박준병 20사단장은 그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였다. 참석자들의 발언이 끝나자, 주영복 국방부장관은 전군 주요 지휘관들의 의견을,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것으로 요약하여 결론을 내리고, 백지를 돌려 참석자들로부터 연서명(連署名)을 받았다. 주영복 국방부장관은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마친 후, 회의 참석 군 지휘관들의 연서명(漣書名)을 휴대하고 16:20경 이희성 계엄사령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함께 신현확 국무총리를 찾아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논의된 비상계엄 전국 확대 방안과 아울러 대통령을 보좌할 비상기구를 설치하고, 정계 정화를 위하여 국회를 해산하는 내용의「시국수습 방안」을 보고하였고, 신현확 국무총리는 비상기구 설치와 국회 해산은 반대하고,비상계엄 전국 확대 여부는 대통령이 결심할 사항이라는 이유로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하였다. 5.17. 16:50 육본은 1, 2, 3군 및 관구, 사단 작전참모에게 정위치에서 육본 작전참모부장의 지시를 받을 준비를 하도록 지시하였고, 17:00경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온 노태우 수경사령관은 수경사 작전참모에게 중앙청에서 국무회의가 열릴 예정이니 내외곽 경비를 강화하라고 지시하였으며, 19:00경 황영시 육군참모차장의 지시에 따라 김재명 육본 작전참모부장은 전군에 부대 출동명령을 하달하였다. 5.17. 17:10경 신현확 국무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서리, 이희성 계엄사령관, 주영복 국방부장관으로부터 위와 같은 시국수습 방안을 보고받은 최규하 대통령은 신현확 총리의 의견을 묻는 등 장시간 논의한 끝에 19:00경 계엄 확대 방안만을 수용하고 신현확 총리에게 국무회의 소집을 지시하였으며,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은 별도로 소요 배후조종 및 권력형 부정 축재 험의자에 대한 체포·조사 계획을 보고하였다. 5.17. 19:35 중앙청 외곽에는 수경사 30단 소속 장교 18명, 사병 324명이 배치되고, 현관과 국무회의장에 이르는 2층 계단과 복도둥 중앙청 내부에는 수경사 헌병단 소속 장교 17명, 사병 236명이 약 1미터 간격으로 배치되었으며, 21:42 이희성 계엄사령관도 참석한 가운데 신현확 국무총리 주재로 제42회 임시국무회의가 개최되어, 북괴의 동태와 전국적으로 확대된 소요사태 등을 감안할 때 전국 일원이 비상사태하에 있다고 판단된다는 이유로 주영복 국방부장관이 제출한 계엄확대 선포안이 찬반토론 없이 8분만에 의결되고,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23:40경 정부 대변인인 문공부장관이 5.17. 24:00를 기하여 비상계엄 선포지역을 전국 일원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하였다. 5.17. 22:30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전군에 소요 진압부대 투입 작전명령을 하달한 데 이어, 5.18. 01:00경 보안사에서 입안한 정치활동 규제 조치 방안에 따라 모든 정치 활동과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고, 정치목적의 옥내외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하였다. 육본은 1980. 5.18. 02:30경 전국 92개 주요 대학과 국회를 포함한 136개 주요 보안목표에 계엄군 2만5천여명을 배치하였는데, 서울지역은,수경사 작전통제하에 1공수여단을 연세대·명지대에 5공수여단을 고려대에 11공수여단을 동국대에, 13공수여단을 성균관대·서울의대에, 20사단을 서강대·홍익대·단국대·산업대·한양대·건국대·경희대·국민대에 각 배치하고, 수도군단 작전통제하에 9공수여단을 서울대에, 1야포단을 중앙대·숭전대에 각 배치하는 등 1·5·9·11·13공수여단과 20사단을 18개대학에 배치하였고, 부산·경남지역은 [[제2군관구사령부]] 작전통제하에 39사단과 해병 1개 연대를 부산대·동아대 등 12개 대학에,대구·경북 지역은 [[제5군관구사령부]] 작전통제하에 50·36사단·해병 1사단을 경북대·영남대 등 9개 대학에, 충남북지역은 [[제3군관구사령부]] 작전통제하에 32·37사단·7공수여단 2개 대대를 대전대·충남대 등 8개 대학에, 전남북지역은 전교사(전투[[교육사령부]])[* 예하 상무대가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현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에 소재, 이후 장성군으로 이전함] 작전통제하에 31·35사단과 7공수여단 2개 대대를 전남대· 조선대·전남의대·광주교대 등 30개 대학에, 경기지역은 33사단 등을 인하대 등 4개대학에, 강원지역은 1군수지원사령부 작전통제하에 강원대 등11개 대학에 각 배치하였다. 80. 5.18. 08:00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 접견실에서 5·17 조치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고, 계엄사령관의 중앙관서에 대한 감독권 행사 방안을 연구 검토할 것을 지시하였고, 13:00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중앙정보부장서리, 해군 및 공군참모총장과 육군참모차장, 특전사령관, 수경사령관을 초청, 오찬 회동을 가졌다. 80. 5.18. 09:00경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국무총리, 최광수 비서실장의 조찬 회동에서 계엄 확대 선포에 따른 대통령의 특별성명 발표 문제가 논의되어, 국방부에 필요한 자료를 보내도록 조치하였고, 동일 오전 보안사에서 자료를 마련해 오자, 최규하 대통령은 16:40경 일부 정치인, 학생, 근로자들의 무책임한 경거망동 등으로 국가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어 국가 보위와 국민의 생존권 수호를 위하여 일대 단안을 내리지 않을 수 없어 관계법 규정에 따라 지역계엄을 전국 비상계엄으로 전환 선포하고, 국가 기강과 사회 안정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였으며, 누차 천명한 정치 발전은 착실히 추진해 나갈 것이라는 내용의 5·17조치 관련 특별성명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헌법]]에 규정된 국회통보 절차도 거치지 않고 계엄군을 동원, 국회를 무력으로 봉쇄한 채 취해진 불법 조치였다. 비상계엄의 확대에 따라 전북 금마에 주둔하고 있던 7공수여단이 17일 저녁 10시경 [[광주광역시|광주]]에 투입되어 [[전남대학교]], [[조선대학교]], [[광주교육대학교]] 등에 진주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